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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pinion

[표지만 다른 우리 이야기] 열등감은 민주주의를 파괴한다 1

가난, 절망, 시골, 마약, 알코올 

매일경제에서 다소 도발적인 제목의 기사를 낸 적이 있습니다. (트럼프 현상 근원은 우리가 모르는 너무나 가난한 미국 - 매일경제)
내용의 일부를 잠깐 볼까요?

미국 남서부에 있는 애리조나주는 실리콘밸리가 자리 잡은 캘리포니아주에서 그렇게 멀지 않다. 그러나 애리조나주 농촌에 사는 백인 청년의 절망과 좌절은 충격적이다. 우버의 내부 기업 문화를 고발한 책 ‘휘슬블로어’의 저자 수전 파울러가 그 지역 농촌 출신이다. 그는 그곳 백인 청년들이 최저임금도 못 받는 일자리를 전전하다 마약에 중독된다고 했다. 정부 보조금과 푸드 스탬프로 연명하며 트레일러촌에서 삶을 살아간다고 했다. 고교를 졸업한 청년들 다수가 그렇다고 했다. 저자 역시 그 인생에서 빠져나올 수 없을 거 같아 밤마다 하느님을 원망하며 울음을 터트렸다고 했다.
J.D. 밴스가 쓴 책 ‘힐빌리의 노래’를 인용해 보자. “썩어가는 낡은 판잣집이며 음식을 구걸하는 유기견들, 잔디밭에 아무렇게나 널려 있는 헌 가구들… 방이 두 개 딸린 어느 작은 집을 지나가던 중에 그 집 안방 창문의 커튼 뒤에서 누군가 나를 놀란 토끼 눈으로 쳐다보고 있는 걸 느꼈다. 유심히 살펴보니, 창문 세 개에 나뉘어 붙어 있던 최소 여덟 쌍의 눈동자가 보였다. 두려움과 간절함이 심란하게 뒤섞여 있는 눈동자였다. 현관문 앞 포치에는 서른다섯 살이 채 안 돼 보이는 마른 남자가 앉아 있었다. 틀림없이 그 집의 가장이었다. 사나운 개가 황량한 앞마당에 널린 헌 가구를 지키고 있었다. 그가 직업이 없는데…그 집은 잭슨의 산골 사람들이 사는 모습을 거의 전형으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런 삶을 사는 그들이 고학력층, 다시 말해 이른바 ‘창조계급’을 대변하는 정당이 된 민주당을 지지할 수 있을까.

 
이전 글들을 통해 

미국의 현실을 가끔 언급드렸는데요.
한국인 입장에서는 도시와 농촌의 개념차이 때문에 오해하는 부분들도 가끔 있는 듯합니다.

미국의 도시 ≠ 한국의 도시

전체 미국인 80%는 도시 지역에 삽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시 지역(urban areas+urban clusters)의 기준 인구수는 2500명입니다.
그러므로 미국인의 80%가 도시에 산다는 것이,

    • 그 80%가 뉴욕이나 샌프란시스코의 광역도시권에 산다는 뜻은 전혀 아닙니다.
    • 미국인의 40%는 도시 전체의 인구가 5만 명이 되지 않는 곳에 삽니다.
    • 5만 명이면 서울 제외 한국 지자체 인구 순위(1등 수원, 2등 울산, 3등 용인....)에서
    • 160위권의 인구수입니다. 물론 행정구역 크기는 고창이나 금산보다 훨씬 넓겠죠.

아울러, 2010년 인구조사 기준, 미국인의 59%가 자신이 태어난 주에서 삽니다. 대도시가 드문 주로 갈수록 비율은 더 높아집니다
2000년까지만 해도 해외여행을 가기 위한 여권이 있는 미국인은 17%에 불과했습니다. 여권을 가진 사람들은 대부분 도심 지역에 거주하고, 미국 밖은 커녕 자신이 태어난 주를 벗어나본 적이 없는 비중도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도시에 사는 이들보다 훨씬 높았습니다.

미국의 지역감정 ≠ 한국의 지역감정

한국에서는 같은 도, 예를 들어 경상북도라면 대구의 정서나 봉화, 청송의 정치적 정서가 다르지 않습니다.
미국도 과거에는 그랬습니다.  
지금은 같은 주에 살더라도 도시에 사느냐 시골에 사느냐에 따라 첨예하게 갈리며,
다른 주에 살더라도 대도시끼리, 시골끼리 비슷비슷한 정서를 보입니다. 

시골 사람들의 King 트럼프

고색창연한 표현이지만, '도농갈등'의 전형이라고 할 수 있는데요.
2000년과 2016년의 공화당(빨강)/민주당(파랑)의 지지율 지도를 비교해 보면 차이를 쉽게 알 수 있습니다.

16년부터 두드러잔 도농갈등

 
이번 트럼프와 해리스 대결의 대표 경합주였죠, '24년 대선 펜실베이니아 주의 지지율 지도를 보아도, 

농촌 = 트럼프, 대도시 = 해리스

2016년 현상이 고착화된 모습입니다. 왜 그럴까요?

누가, 무엇이 문제인가?

Katherine J. Cramer 교수의 <The Politics of Resentment>라는 탁월한 책이 위스콘신주를 10년 동안 관찰하며 깊은 통찰을 제공하는데요. 인터뷰를 하면 할수록 시골에 사는 사람들이 위스콘신 주에서 가장 큰 도시인 밀워키와 매디슨에 사는 사람들에 대해 얼마나 분노하고 있는지 알게 됩니다.
시골 사람들의 의견은요..

  • 도시에 사는 사람들이 세금은 덜 내면서 정부 혜택은 더 많이 받고, 정부 복지 혜택을 바라고 있다고 생각
  • 도시 사람들은 시골 사람들의 라이프스타일이나 생각을 전혀 존중해주지 않으며,
  • 자신들을 그저 생각 없는 인종주의자로 치부한다며 분노.
  • 중요한 결정이 도시에서 이뤄지고 자신들을 정치인들이 무시한다는 생각.
  • 특히 시골 백인 유권자들은, 흑인을 비롯한 소수 인종이 노력한 바에 비해 큰 혜택을 받고 있으며,
  • 자신과 같은 백인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하고 역차별당한다고 주장
  • 힐러리로 상징되는 ‘도시 엘리트 정치인’과 달리 트럼프가 자신들의 불만에 관심을 기울였기 때문에 지지

그렇다고 합니다(....) 그러나, 크레이머 교수의 확인 결과

  • 위스콘신 주정부와 연방정부가 각 카운티에 보내는 일인당 보조금은 시골이 더 높지만
  • 정부에 내는 일인당 세금은 시골로 갈수록 더 적다는 사실

을 알게 됩니다. 쌍방인 줄 알았더니 일방폭행
그러자 Charles Murray 같은 보수 논객의 과거 글이 시골 사람들이 대도시 사람들을 싫어하는, 보다 그럴듯한 설명으로 제시됩니다. 도시 엘리트들이 '엘리트 버블’ 안에 자기 자신을 가두었고, 그 결과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사는 ‘평범한 미국인’들이 겪는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문제 해결책을 내놓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여기다 FT의 Simon Kuper 같은 기자는 시골 사람들이 싫어하는 도시 맛(?)을 밝히며, 트럼프가 이러한 시골정서를 잘 공략했다고 합니다. 내용의 일부입니다.

“the elite” but not all class members are rich. Adjunct professors, NGO workers and unemployed screenwriters belong alongside Mark Zuckerberg. Rather, what defines the cultural elite is education. Most of its members went to brand-name universities, and consider themselves deserving rather than entitled. They believe in facts and experts. Most grew up comfortably off in the post-1970s boom. Their education is their insurance policy and, so almost whatever their income, they suffer less economic anxiety than older or lesser educated people. Their political utopia is high-tax, egalitarian, feminist and green.

돈을 잘 벌고 못 벌고를 떠나, '문화적 엘리트' 맛(?)이 싫다는 거네요. 지적 수준이 높고 도덕성이나 삶의 목표가 확실한 것 사람이 싫다니, 전형적인 반지성주의입니다. 열등감 느끼게 만드는 니가 싫다

James Stimson 교수의 핵펀치

노스캐롤라이나 대학 채플힐 캠퍼스의 정치학자 제임스 스팀슨은 오히려 시골 사람들을 문제의 원인으로 꼽습니다. 야수의 심장
스팀슨 교수는 

  • 시골 사람들은 시대가 변하고 세상이 바뀌었는데도 새로운 기회를 좇아 다른 곳으로 떠나지 않고 일자리가 줄어드는 시골에 남아 도시를 탓하고 정부를 탓하며 분노만 쌓았다고 분석
  • 자신이 나고 자란 고향을 떠나는 사람들과 고향에 머무르는 사람은 근본적으로 위험을 감수하려는 자세, 새로운 문화와 다른 인종을 받아들이려는 태도, 야망과 열정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주장

합니다.  교수님 '25년에도 건강하시죠? 공화당 정치인과 보수 논객의 주장인, '정부 자원 대부분을 도시 사람들이 빼앗아가고,도시 엘리트들은 도시 바깥의 삶에 무지해서 시골에 사는 유권자들이 어려움을 겪는다.'를 정면으로 반박한 것인데요.
심지어, 민주당은 이러한 유권자들에게 아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합니다.

상남자의 인터뷰

대책은 없다. 한국에도 곧 온다.

사실 저는 스팀슨 교수의 반박에 일종의 무력감을 느꼈습니다. 말이라도 시원하게 하고 죽자
시골사람들의 도시 엘리트(?) 혐오는 합리적인 사고의 결과가 아니라, 의지의 결과입니다.
10년 이상 이어진, 미국의 현재 시대정신입니다.
"올리브쌤"의 아래 레전드 영상이 만들어진 지 벌써 5년이 되었고, 상황은 더욱 나빠졌고, 트럼프는 다시 대통령이 되었습니다.
https://youtu.be/XLbKeLjlE0 U? si=XH8 ejo0 y7 Q_8 WbgO&t=543

지성 = 대도시, 엘리트, 전문가, 의사, 백신

 
아울러, 한국 역시 농촌 지역 범죄율이 이미 15년 전부터 꿈틀대며 전조 증상을 보이고 있습니다. 미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이와 같이 살인, 강도, 강간, 폭력, 절도 등 5대 범죄의 농촌과 도시의 인구 100,000명당 구성비를 보면, 농촌이 서울을 제외한 여타 도시 보다도 더 그 발생률이 높은 것을 알 수 있다. (한국경찰연구학회, 2011)

 
앞으로 한국에서 목도할 현상들은 미국보다 더 환상적(?) 일 수 있습니다. 이런 블로그 읽고 있는 것도 위험할 듯
꽉 잡으세요.
 

※ 이 글의 내용은 아래 기사에 많은 부분을 인용했습니다.
시골 사람들이 트럼프를 지지하는 이유 < 유혜영의 지도와 데이터로 들여다본 미국>
Opinion | The Closing of the Republican Mind - The New York Tim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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